[랩2050 수요랩레터 #019] 선거 판세를 바꿀 비장의 카드

kimmy
발행일 2024-03-07 조회수 114
안녕하세요. 수요랩레터의 윤형중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책·공약마당 웹페이지   
 
 
레터 제목을 '선거 판세를 바꿀 비장의 카드'라고 썼지만, 사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단어가 '판세', '비장의 카드' 등입니다. 우리 정치에서 정책보다 늘 '권력과 주도권 다툼'이 핵심 이슈였고, 선거에선 공약보단 '판세'와 '인물'이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거에서 비장의 카드도 누군가의 영입, 등판, 퇴장 등등의 이벤트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죠.
 
제 비장의 카드는 다릅니다. 바로 '정책'입니다. 저를 오래 봐온 분들이라면 "너 또 그 얘기냐"고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진짜 비장의 카드입니다. 이번 선거에선 정말 정책으로 판세를 바꿀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들어보시죠. 
 
많은 분들이 이번 총선을 보며 '이렇게까지 정책이 안 보이는 선거는 처음'이라는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지금껏 어느 선거도 정책 의제가 주류가 된 적은 없었으나, 이번처럼 공약이 안 보이는 선거는 또 없었죠. 지금이 모든 부문에서 평온하고, 별 문제가 없는 시대라면 이런 선거도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유례 없는 저출생 고령화 추세, 임박한 기후 재앙과 기후 규범의 무역 장벽화, 악화되는 양극화와 이 모든 충격들의 불평등한 영향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책 선거'를 치러야 할 때입니다. 
 
당위는 이 정도로 얘기하고요. 최근 선거 판세의 유의미한 변화는 여당의 상승세와 야당의 하락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평론가들은 '공천 관리'를 주된 원인으로 꼽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최근의 흐름이 만들어진 이유는 최근 정부가 정책 의제를 주도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 실패한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 개혁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고, 십수년간 양육자들이 목이 쉬도록 제기한 초등 돌봄 절벽 문제를 다루는 '늘봄학교' 정책을 교육부가 드라이브 걸고 있습니다. 이 정책들을 추진하는 방법론에 대해선 분명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정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두 정책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학원 뺑뺑이, 등하교와 등학원시 교통사고 위험, 당장의 돌봄 등 많은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뒤 2년간 스스로 밝힌 3대 개혁(연금, 교육, 노동)에서 전혀 맥을 못 짚으며 정책적인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한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움직임입니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기색이 역력하고, 선거 이후에도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으며 세심하고도 뚝심있게 추진해 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죠.
 
하지만 야당은 어떻습니까. 국민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정책 의제를 제시하고 있나요? 맨날 뉴스에서 정책만 찾아보는 제게도 잘 안 보이는데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인상 깊은 정책 발표가 있었나요? 
 
그래서 '정책'이 비장의 카드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책,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을 분명하게, 진정성 있게, 정성들여 제시하는 쪽이 판세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아예 정당마다 하나씩 조언도 드려볼까요. 
 
더불어민주당이 요즘 보이는 모습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의료개혁과 초등돌봄 확대는 원래 민주당이 더 열심히 추진하던 정책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어정쩡한 스탠스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보인 모습과 여러 발언들에 대해 지적하자면 끝도 없습니다만, 이 글에선 1) 전향적 자세와 2) 구체적 개혁 방법론 주도라는 두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정부의 의료개혁, 늘봄학교에 전향적 자세를 보인 뒤에 원래 강점을 가진 구체적인 방법론을 주도해야 한단 의미입니다. 
 
원래 개혁을 하자면 이해집단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충분히 소통해 갈등을 줄이고 대책을 마련하면서도 필요한 개혁은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게 2020년은 뼈아픈 해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개혁, 초등돌봄 개혁이 모두 좌절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의대 증원,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등의 의료개혁을 추진하다 의료계 파업과 같은 강력한 반대를 접하며 뜻을 접었습니다. 같은 해 교육부는 2020년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 교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교원단체의 반대로 철회했습니다.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였고,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법안들도 여럿 발의하며 추진했던 정책들이 매번 이익단체를 만날 때마다 접었던 전력이 있었죠.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정부의 개혁 의지를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 의지가 변치 않도록 확실히 해두어야 합니다. 지난해 말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는 그때만 해도 강력 반발했는데요.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엔 지역의사제, 공공의대와 비슷한 정책들이 담겨 있죠. 민주당으로선 정부의 개혁 의지를 확인할 절호의 기회 아닌가요? 두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면 됩니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만드는 초당적 협의체를 구성하자고도 제안해보시죠. 
 
늘봄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문재인 정부가 초등돌봄을 제대로 법제화하려던 첫 번째 정부였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공약도 지금의 돌봄학교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여러 OECD 국가들처럼 저학년과 고학년들이 오후 3시에 동시 하교하는 '초등 3시 하교제'까지도 '소확행 공약'에 담겼죠. 이런 정책은 지금의 돌봄학교보다도 더 나아간 정책입니다. 대선 때 민주당은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 50%로의 확대도 공약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총선 대표 공약으로 '초등 3시 하교제'와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 50%'를 내거는 것도 방법입니다. 
 
녹색정의당은 본래의 전공이던 기후와 노동 정책을 주도해야 합니다. 마침 기후정치바람(준)의 조사 결과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기후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있다면 투표 의향이 있는 응답이 60%가 넘는다고 합니다. 과연 22대 국회는 어떤 기후 정책들을 실행해야 할까요. 기술 변화로 녹아내리는 노동(노동자를 보호하는 법규가 달라진 노동 형태를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까요. 누군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새진보연합,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진보당, 조국혁신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진 선거 구도, 이합집산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각 정당의 시그니처 정책으로 평가를 받을 때입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빠뜨렸군요. 지금의 정책 드라이브는 여당이 아닌 정부가 걸고 있고, 여당은 수혜만 받고 있죠. 국민의힘이 기세를 이어가려면 그동안 의료개혁, 돌봄 확대에 반대했던 과거의 행보에 대해 공개반성문을 쓰고, 야당들과 '정책협의체'를 결성해 개혁의 완수를 약속하시죠. 선거 뒤에도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안 지키면 어떻게 할지도 미리 밝혀두시고요. 
 
마침 선거 한 달 전인 3월 10일쯤 중선관위 홈페이지에 각 정당의 10대 공약이 게재됩니다. 얼마나 성의있게 공약을 제출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