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정책 정당으로 가는 험난한 길"

총괄관리자
발행일 2023-08-30 조회수 296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정책 정당으로 가는 험난한 길

윤형중 LAB2050 대표
2023.09.04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8월 10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8월 10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적 상태의 프리랜서가 된 2020년 5월, 스스로 하는 일을 정의해 그 직업의 명칭을 ‘정책연구자’로 불렀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취지였다. ‘법규와 예산의 조합’이자,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대안을 제안하며 경력을 쌓고 싶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던 길이라 처음엔 걱정이 앞섰지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있었다. 우선 대선 본선에서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본부의 상근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국회 다수당이자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의 대선캠프에서 주요 공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조정되고 조율되는지를 직접 경험한 소중한 기회였다. 두 번째 기회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고정 코너다. 지난해 5월 초부터 1년 4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과 현안을 ‘딜레마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왔다.

이 두 기회를 통해 여러 경험을 하며 품고 있던 의문이 있었다. 왜 국회 의정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대선 공약이 만들어지지 않고, 여러 전문가와 국회 보좌진들로 팀을 구성해 대선 공약을 따로 만들까. 이렇게 공약을 만들어봤자, 집권해 국정 과제를 만들고 실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주체들이 조금씩 다르고, 이 과정들이 서로 분절적인데, 왜 이렇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풀려면 정당 운영의 중심에 정책이 있어야 하고, 집권 시에 국정 운영의 중심에 정당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들은 왜 선거만 열심히 준비하고, 선거에서 이긴 뒤에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한 준비를 왜 제대로 하지 않을까. 정치의 목적이 국민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면 그 수단은 정책뿐인데, 왜 정당은 정책 역량을 키우는 것에 관심이 거의 없을까. 왜 정당에서 정책은 늘 찬밥일까…. 끊임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또 물었다.

 

혁신안에 정책 정당 방안을 담은 취지

정책연구자로서 세 번째로 얻은 소중한 기회를 통해 이런 의문들을 해소하는 구조적인 해법을 고민할 수 있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으로 활동할 기회였다. 지난 6월 20일에 출범한 민주당의 김은경혁신위원회는 52일 만에 활동을 종료하고 최종 혁신안을 제출했다. 이 글에 혁신위원으로서 혁신안 중에서도 정당의 정책 역량 강화 방안을 만들기까지의 고민을 담아봤다.

먼저 현재 정당에서 정책을 다루는 체계는 어떨까. 정당의 존재 이유가 정책으로 국민 삶을 개선하는 것이기에 정당 내 모든 기구는 당연히 정책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정책을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기구는 정당 내 ‘정책위원회’와 정당 부설 ‘정책연구소’다. 이 기관들이 당의 모든 기구가 다루는 정책뿐 아니라 헌법기관인 국회와 집권 시에 정부가 펼 정책과 공약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원칙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관료들이 주도하고, 국회에서의 정책 논의는 개별 국회의원들이 이끄는 편이다. 다시 말해 정당은 선거를 통해 배출한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정책 역할을 이양한다. 이렇다 보니 정당의 정책 기능을 정치인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선출직 정치인이 되는 중요 요건이 정책 역량도 아니기에 정당과 정치인 모두 정책 기능이 허약한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정당이 정책의 핵심 행위자가 돼야 한다. 정당은 정책 기능을 정치인들에게 이양할 게 아니라 개별 정치인들의 정책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당 소속 정치인들의 협업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을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정책위원회’와 ‘정책연구소’의 기능과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 기구에 자원 투입을 늘리고, 최대한 정책 분석, 연구, 생산에 전념하게 하면 된다. 투입하는 자원이란 결국 돈과 사람이다. 지금은 어떨까. 정치자금법 제28조는 정부가 정당에 지급하는 ‘경상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연구소가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전금을 합친 국고보조금이 지난해 1420억원, 2021년 463억원, 2020년 907억원 수준이었다. 어림잡아도 정당들의 정책연구소에 100억원 이상, 거대 양당은 각각 5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책위원회는 어떨까. 거대 양당은 정책위원회 내에 법적으로 보장된 별도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임용 등에 관한 규칙’에 의해 77명(모든 정당 총합)의 전문인력 지원이 보장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현안 대응을 하는 정책위원회와 정책 연구와 장기적 정책 방향 수립을 맡는 정책연구소가 제 역할을 할 만한 충분한 재정적·인적 기반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결정적인 문제는 정당법에 규정된 당직자의 인원 제한이다. 현행 정당법 제30조는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의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한다. 당원이 200만명이 넘고, 국회의원만 169명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 법에 따라 100명 이하의 인원으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 이 규정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은 실제 운영에서 드러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정책연구소의 연구원과 정책연구위원을 부족한 당직자를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혁신안에 당원이 답한다’ 기자회견이 8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혁신안에 당원이 답한다’ 기자회견이 8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는 거대 양당

회사의 인원이 100명 이하면 중견기업 축에도 못 끼는 중소기업에 속한다. 그런데 여러 번 집권한 거대 양당의 당직자의 인원을 100명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연원을 따지면 2002년 대선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정치자금 비리 사건인 ‘차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현대차, LG그룹 등에 현금이 가득 든 승합차, 트럭 등을 통째로 받는 방법인 이른바 ‘차떼기’ 수법으로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지자,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뜨거워졌고, 지구당 폐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안이 통과됐다. 그 안에 담긴 내용 중 하나가 당직자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는 정당법 개정안이었다. 정당에 인원이 많고 조직이 커봤자 돈만 많이 들고 비리만 많아진다는 게 당시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면서 정당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고, 정당의 회계투명성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이 규정으로 인해 정당은 정책 기능 강화를 비롯해 신진 정치인 양성과 여러 의제 활동 활성화 등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당법을 개정하자니 ‘정치권의 밥그릇 늘린다’는 비판이 두려워 쉽게 나서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나마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주체가 2020년 총선 뒤에 만들어진 더혁신위였다. 더혁신위의 김종민 당시 위원장은 2021년 1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 전문가들이 국회와 정당에 많아져야 한다”며 “현재 총 77명 수준인 정당 소속 정책전문위원을 300명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정당법을 개정해 당직자 인원을 조정하는 방안도 혁신안에 담았다. 이 당시 민주당에 배정된 44명의 정책연구위원 가운데 실제 정책위원회 전문위원 역할을 하는 이는 11명이었고, 김은경혁신위원회가 활동한 2023년 7월 기준으론 23명이었다. 나머지 인원은 중앙당에 파견돼 부족한 당직자 수를 보충했다는 뜻이다. 11~23명 수준으로는 17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혼자 맡아서 담당해야 한다. 이를테면 거대 야당에서 복지 정책 담당자가 1명인 셈이다. 이러고서 과연 정책 정당을 논할 수 있을까.

 

비전이자 촉진제인 섀도 캐비닛

정책 정당으로 가는 길이 험난한 이유는 ‘정치혐오’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당직자 인원을 늘리자, 정책 전문가를 더 채용하자 등의 제안은 정당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 절실한 과제지만, 그렇게 인원을 늘려봤자 정당이 정책 기능을 강화하지 않고, 늘어난 자원으로 선거를 위해 조직을 관리하는 일에만 집중하리라는 불신도 상당하다. 이런 불신을 돌파하기 위해 이번 혁신위에선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함께 제시했다.

혁신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18개 정부 부처별 ‘책임국회의원’을 1명씩 두는 ‘예비내각’(섀도 캐비닛)을 구성해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담았다. 섀도 캐비닛은 정부의 각 부처 장관에 맞설 야당의 각 분야 책임자를 세워, 국회 운영을 내실화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국회 상임위 기능을 강화하는 취지도 있다. 혁신안에 “예비내각의 구성원인 책임국회의원은 담당 상임위원회에서 ‘정책실무협의회’를 내실 있게 이끌”어 “정부 부처별 정책, 법안, 예산 대응 전략을 주도”하는 내용을 넣은 이유다.

섀도 캐비닛이 잘 운영되려면 국회의원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정당이 체계적으로 책임국회의원을 지원해야 한다. 그 역할을 정당의 정책위원회가 맡도록 설계했다. 이를 위해 전문인력의 충원도 중요하다. 각 부처를 담당하는 정책연구위원이 최소 5명씩은 있어야, 정부에 맞서 정책 경쟁을 벌일 수 있다. 정책연구위원들을 중앙당에 파견하지 않고 정책 업무에 집중하게 하려면 당직자 인원 제한도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혁신안에 “현실적 여건에 맞게 중앙당과 시도당 사무처 당직자의 인원 제한을 풀어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 한 문장을 혁신안에 넣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이런 개혁이 선행되면 정책연구소가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여건이 조성된다. 연구소의 지향점으론 “민주개혁 진영의 정책 허브 기능을 하는 싱크탱크”를 제시했다. “학계, 민간 연구기관, 시민사회 등과 협업체계를 마련하고,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며, 이런 역할을 위해 “민주연구원장의 임기를 보장해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하자고도 제안했다.

이외에도 최고위원 중에 당대표가 지명하는 2명을 ‘책임국회의원’(정책 최고위원) 가운데 지명하고, ‘정책대변인’ 직제를 신설하며, 일 년에 한 차례 ‘정책(공약) 추진 경과 국민보고회’를 개최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이 모두가 정책을 정당 운영의 중심에 두는 방안이다.

김은경혁신위원회는 이렇게 정당의 정책 역량 강화 방안을 내놨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필자는 그러나 정당이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을 짜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유능한 정책 정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이기면 정당이 기쁘지만, 선거 승리 뒤에 정책을 잘 집행하면 국민이 기쁘기 때문이다. 부디 이 방안이 사장되지 않고, 심도 있는 논의로 이어졌으면 한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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