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난 수십년 동안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은 규제로 격하한다. 또한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 성찰이 필요함에도 이해 당사자들과의 소통은 찾아볼 수도 없다. 오히려 기존의 거버넌스조차 파편화시켰다. 개념의 재검토가 아니라 무개념과 몰이해로 봐야 한다. 주요 국정과제와 예산을 꼼꼼히 살펴보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구조적 차별은 구시대적 유물로 취급한다.
명시적으로 기존의 약자 지원을 끊거나 사각지대 문제를 도외시하지는 않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2.5%)이나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2389억원)은 물론 장애인 저상버스 도입(220억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보편적 복지 대신 가장 취약한 계층을 두껍게 보호한다는 ‘두꺼운 복지’의 허상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30여년 전 새로운 사회현상을 조명한 한 권의 책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배울 점이 많다. 벡은 과거의 자연재해나 지나친 과학이나 기술의 위험을 지적했다. 나아가 그로 인한 불안 증대로의 사회현상을 전망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았다. 국가와 사회가 생산과 이윤 중심의 논리에만 맡겨두었을까. 오히려 사회·경제 시스템과 삶의 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적절한 개입과 규제가 있었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보면 국가와 사회는 무한경쟁의 시장 자율에만 맡겨 놓지 않았다. 지나친 과학·기술발전의 폐해는 물론 급속한 산업구조 개편 과정이 초래한 문제점에 개입하고 통제했다.
무릇 국가는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된 취약계층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성찰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제기된 아프면 쉴 권리나 전 국민고용보험, 보건의료·돌봄 등 필수노동자 문제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진척된 것이 없다. 특히 바이러스나 기후위기에 차별이 아닌 평등한 정책은 더 필요하다. 이제라도 ‘허용할 수 없는 위험’과 ‘허용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과거의 위험을 터부시하고 새로운 위험만을 찾는 것은 큰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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